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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정책 이슈

문화융성의 이상과 현실에 관한 관전평

한승준 (서울여자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 ‘문화융성의 방향과 추진계획’ 발표(8. 18) ©문화체육관광부






필자는 ‘행정학’이라는 학문적 배경을 토대로 문화정책을 전공하고 있다. 이는 ‘문화’와 ‘행정’의 중간자적 관점에서 ‘문화정책’을 바라보는 경향성과 경험으로 이어진다. 2015년은 기획재정부 국고보조금 평가위원으로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재청 사업의 일부를 살펴보았으며, 기획재정부가 추진한 기관 통·폐합 자문회의에도 참석해 보았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문화융성의 ‘총론’과 ‘각론’ 사이의 상당한 간극이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

l '이상'으로서의 문화융성

2013년 2월 25일 대통령 취임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문화융성’을 국정기조의 하나로 제시하였다. 2013년 3·1절 기념사에서도 문화융성을 통해 국민행복과 한반도 평화통일, 행복한 지구촌을 이루는 데 기여하고, 문화를 통해 국민이 하나 되고 세계인이 함께할 수 있는 문화융성의 시대를 만들어 가겠다고 천명하였다. 현 정부는 ‘문화융성’을 국정기조의 하나로 제시함으로써, 문화를 국정기조로 명시한 최초의 정부가 되었으며, 문화계로부터도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이만큼 문화를 강조한 대통령이 또 있을까.” 박 대통령의 취임사를 접한 문화계 인사들이 이구동성으로 내놓은 반응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모든 정책에 문화적 가치 반영을 의무화하고, 소외계층의 문화예술 향유 기회를 넓힌 것은 획기적 성과로 꼽힌다(세계일보, 2014.02.23.). “그나마 2013년의 보람으로 문화 발전을 위한 새로운 노력을 꼽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한국일보. 2013.12.31.). “정부의 문화정책이 어느 때보다 주목받은 2013년이었다. 새 정부 초에 문화정책이 이처럼 크게 부각된 것은 처음으로 평가된다”(연합뉴스, 2013.12.09.).

왜냐하면 문화의 중요성과 문화융성에 대한 논의는 그동안 경제성장의 결과로 우리나라의 경제규모가 커지고 국격이 높아진 반면, 국가라는 거대 담론하에서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은 경시되고 그 결과 국민의 행복 수준은 낮다는 현실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현 정부 문화융성 정책의 최종적 목적은 문화를 통한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과 국민 행복의 고취에 있다.
현 정부는 이러한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문화기본법」 제정, 문화예산 2% 달성, 대통령 직속의 문화융성위원회 설립 등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판단된다. 집권 중반기에 접어든 2015년 8월 국무회의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은 '우리 스스로에 대해 저평가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극복하고 민족적 자긍심을 높여야 한다면서 후반기 정국 구상의 하나로 ‘문화융성’을 강조하였다. 이에 발맞추어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은 내년 예산을 청년일자리, 경제 재도약, 민생안정, 문화융성에 중점을 두겠다고 밝히고 있다. 문화 분야와 관련해 2015년보다 7.5% 늘어난 6조6천억 원을 편성해 문화 융성을 뒷받침하겠다는 것이다.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총론적으로는….

l '현실'에서의 문화융성

문화융성의 중요성에 대한 대통령의 거듭된 강조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 현장의 분위기는 집권 초반과는 사뭇 다른 듯하다. 여러 가지 논란 등으로 문화계 인사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문화융성'의 총론이 아무리 좋은 취지를 담고 있어도 각론과의 통일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안타깝게도 현 정부 문화융성 정책의 현실은 ‘위’, ‘아래’가 따로 놀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례로 기획재정부는 문화 분야에 대해서도 경제논리를 앞세운 구조조정을 추진하였다.
기획재정부가 주도한 문화·예술 분야 공공기관 기능조정 정책은 공공기관의 부채관리 강화와 방만경영 개선이라는 일반적 잣대로 문화예술 관련 공공기관들을 통·폐합하고자 하였다. 대통령 보고사항이라는 명분으로 기획재정부는 개별 기관들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속도전을 통한 통·폐합을 추진하였다. 그러다 보니 기관의 규모가 판단의 근거가 되었을 뿐, 통·폐합의 원칙이나 효과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였다. 4월에 부랴부랴 마련된 기능조정 방향에 관한 정책토론회도 알맹이 없는 통과 의례적 색채가 짙었다. 과연 기획재정부의 담당 공무원들이 이들 기관들의 특색이나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최소한 해당 기관들을 한 번이라도 방문하였는지가 의심이 생길 지경이었다.

기획재정부는 올 한 해 동안 국고보조금 사업에 대한 전수 평가를 실시하였다. 국고보조금 사업이 상대적으로 방만하게 운영되고, 향후 세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국고보조금 사업에 대한 엄격한 평가와 비효율 감소 조치는 불가피하다. 기획재정부의 국고보조금 사업 평가의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은 “왜 그 사업이 국가의 예산 지원을 통해 이루어져야만 하는가?”에 대한 명백한 해답을 제시할 수 있는가 여부였다. 안타깝게도 문화예술의 본질적 특성상 이러한 물음에 명쾌한 해답을 제시할 수 있는 사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현 정부 문화융성 정책의 궁극적 목적인 “문화를 통한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과 국민 행복의 고취”는 기획재정부의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성과 요구 앞에 한없이 초라해질 뿐이었다. 소액예산 사업은 아무리 그 취지가 좋아도 앞으로는 지자체나 기관이 자체적으로 재원을 마련해서 수행해야 할 것이다.
문화융성의 최종 대상자는 일반국민이지만 1차적 대상자는 문화예술 정책의 수행자인 문화예술인, 문화예술 분야 공무원, 문화예술 기관 종사자이다. 문화융성을 국정기조로 제시한 최초의 정부에서 이들의 사기와 문화융성에 대한 체감도는 결코 높지 않다. 그런데도 ‘위’에서는 ‘문화융성’에 대한 국민체감도 향상을 위해서 ‘문화의 날’ 행사를 강화하는 등의 단편적 대안의 마련에만 몰두하는 형상이다. 수치는 만들어지고 개선될 것이다. ‘문화의 날’ 행사에 참여한 국민의 숫자는 증가할 것이고, 문화융성 정책에 대한 체감도도 단기적으로 올라갈 것이다. 다만, 과연 문화를 통한 국민의 삶의 질과 행복은 나아지고 있는 것인가? 과연 문화계 인사들은 현 정부 문화융성 정책에 대해서 출범 초기와 같은 지지를 보내고 있을까? 침묵과 냉소주의가 느껴진다.

l 문화융성의 운명

현 정부가 문화융성을 국정기조의 하나로 제시하였다는 것은 문화적 관점이 모든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 지붕으로써의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문화체육관광부뿐만 아니라 모든 정부 부처가 문화적 가치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를 갖추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알다시피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은 예술과 학문의 후원을 통해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탄생과 발전에 큰 역할을 하였다. 코지모 데 메디치의 저택에서는 어떤 예술가라도 실력만 있다면 누구든 들어와서 작업을 할 수 있었는데, 그 유명한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보티첼리도 그의 정원에서 작업을 했다고 한다. 코지모는 자신의 집안에서 작업하는 예술가들을 보러 왔는데 "좋군."이라는 말 이외에는 별다른 말이나 간섭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문화융성은 통제와 평가보다는 지켜봄과 지원이 더 적절한 정책수단임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획재정부가 문화융성의 의미와 문화정책의 특성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를 가질 수 있도록 문화체육관광부가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지속적인 노력을 수행해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융성에 대한 소명의식과 저돌성이 담보되지 못한다면 문화를 통한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과 국민 행복의 고취는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한승준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정책학회 연구위원장과 한국문화정책학회 기획위원장을 맡고 있다. 문화정책, 다문화정책, 정책평가 분야의 연구와 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타공공기관 및 단체 경영평가 분과위원장, 자체평가위원, 기획재정부 공공기관 경영평가위원, 국고보조금 평가위원, 총리실 정부업무평가위원, 행정자치부 정책자원위원 등의 활동을 수행하였다. 현재는 문화예술분야에 대한 정책 개입의 수준과 수단의 적절성에 대한 관심과 고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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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