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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정책 이슈

정책과잉이라고?

이흥재 (추계예술대학교 문화예술경영대학원장)
  • 정책과잉이라고?






예산을 확정하는 즈음이 되면 재정당국과 문화부처는 예산규모를 둘러싸고 입씨름을 벌인다. 문화부처는 국가발전을 위해 문화를 기반으로 경쟁력을 키워나가는 것이 새로운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이른바 ‘문화특성’ 때문에 다른 부분보다 문화예산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증액론이다. 재정 당국은 아무리 그래도 예산은 감성적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며 차가운 재정논리로 접근해서 배분해야 한다고 대응한다. 다시 말하면 ‘국가정책균형’ 기반의 우선순위론이다.
여름부터 시작되는 이 해묵은 입씨름은 계수조정에 들어가면 우아한 논리는 흔적도 없이 실종되고 급기야 정치력 싸움으로 내몰린다. 각종 전략, 전술로 밀어붙이고, 정치적 장풍이 휘몰아친다. 막판에는 진검승부도 아닌 자투리 돈으로 쓸 사업을 개발하거나 낙전 줍기까지 하면서 매달린다. 예산동원은 이처럼 논리, 정치력, 전투력, 읍소까지 동원돼 전개되는 한마당이다.

이즈음에 재정당국이 하는 말 가운데 우리가 귀담아들어 볼 것이 있다. 문화사업에는 왜 “비슷비슷한 정책들이 이리도 많은가”하는 투덜거림이다. 이즈음이면 축제계절과 겹치면서 낭비성 축제가 전국에 몇 개나 되는지도 모를 정도로 예산이 낭비된다고 매스컴들이 다투어 긁어댄다. 단순히 문화정책을 디스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넘어갈 일은 아니라고 본다.

이것이 정책과잉으로 비쳤다면 그것이 오해라고 명확히 밝혀줘야 한다. 또, 오해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집고 가야 한다. 왜냐면 이러한 여론의 화살은 문화예산을 비롯한 문화재원의 문제를 다룰 때 또다시 등장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문화정책 전반을 불신하거나 문화재정의 ‘숭고한 역할’을 비아냥거리는데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는 문화부 산하기관 통·폐합문제나 인력구조조정의 당위 논리로 연결되는 등 위험하게 전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l 정책과잉의 착시현상

정책을 개발할 때는 국가운영 기조에 맞추는 것이 당연하다. 또 국가경영 전반의 효율성을 정책철학으로 공유하며 나아가야 한다. 그 정책철학은 해당 부처는 물론이고 관련 산하기관에 까지도 일관성 있게 유지되어야 한다. 즉 정책맥락성을 유지하면서 기조를 갖출 수 있기 때문에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이는 국가경영에서 더 말할 필요도 없이 중요한 기본이다.
여기에서 문제로 제기하는 바는 정책수단이 양적으로 많아서 정책과잉인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실제 동원되는 예산규모와는 관계없이 생기는 ‘정책과잉 착시현상’이라고나 할까.

이렇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원중심의 정책수단을 지나치게 많이 활용하기 때문에 재정당국이 오해를 하는 것이다. 또 문화부 산하기관들이 모두 다 지원사업을 개발하여 지원에 나서다 보니 그렇게 보인다. 지원활동을 작은 영역별로 나누어 집행하다보니 비슷비슷하게 가짓수가 많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지역의 문화재단, 지자체 등이 프로그램 경쟁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도 문제가 있다. 문화정책 영역 세분화에 따른 착시현상이지만, 지원주체들이 기관 성과를 내려고 하다 보니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되짚어 보면, 비슷비슷한 사업들을 관련 기관이 경쟁적으로 개발하고 예산을 배분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은 예산 전략상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는 이를 달성하는 정책수단을 단순하게 지원중심으로 추진하다보니 생겨난 겉모습이지만 전략적이지 못하다.
문화정책에서 정책목표를 달성하는데 활용되는 수단에는 대개 지원, 육성, 보호, 조성, 규제(탈규제) 등이 있다. 문화 부분에서는 유달리 지원중심의 정책수단을 선호하고 있다. 그 이유는 또 무엇일까. 그동안 문화예술계의 현장이 너무 열악했기 때문에 필요한 최소한의 수준을 갖추기에 급급해서 우선 단기간 내에 효과를 거두는 전략이 지원이기 때문이었다. 

l 불이익 적지 않아

실제 정책과잉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처럼 보여서 불이익을 받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그렇지만 엄연한 현실인 만큼 좀 더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책과잉 착시현상이 문화정책에 미치는 불이익은 적지 않다. 매번 정책평가를 할 때마다, 문화부처 평가에 매우 불리하게 작용한다.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는다. 지나치게 과시성 성과내기 사업을 추진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정치적 인기를 감안해서 나눠주기식 예산집행을 한다는 비난을 받는 것은 억울하지만 피할 도리가 없다. 물론, 소모적인 사업으로 반짝 쓰고 축적되거나 발전에 도움되는 일이 적다면 그 비난은 달게 받아 고쳐야 한다. 왜냐면 문화는 천 년을 내다보는 큰 계획이기 때문이다.
이런 흉흉한 이야기들은 결국 국가예산을 배분하는 입씨름 때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기금과 국고 간의 마찰을 줄이기 위해 기금을 조정해야 한다는 정책논리로 쓴다. 유사사업을 통·폐합하고 이 과정에서 중복되는 것을 삭제해버리고 상대적으로 축소화시킬 우려도 있다. 더 심각한 것은 관련 부처를 통·폐합하고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는 단골 메뉴로 거론되는 점이다.

이제 문화정책 환경은 많이 바뀌고 있다. 단기간 성과를 과시하며 더 많은 예산을 확보해야 하던 성장시대의 정책수단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 좀 더 차분하게 성숙된 논리로 정책수단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정책다운 문화정책을 펼치기 시작하던 것이 벌써 한세대를 넘어섰다. 정책환경도 지역 분권이 자리를 잡고 기업이나 민간의 역량이 커졌기 때문에 중앙정부가 개발하고 집행하던 방식은 어떻게든 변해야 한다. 인프라에 치중하던 지원대상도 이제는 지원과 보호를 넘어서 새로운 수요에 맞게 소프트웨어, 육성, 조성에 힘을 모아야 한다. 

l 성숙시대의 정책수단으로 자극해야

실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과잉이라고 보인다면 대응할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이런 점에서 생각해보면 문화정책 과잉논란 전개는 우리 생체구조와 비슷하다.
과식해서 신체 영양구조가 깨질지 모른다고 생각되면 과식 느낌이 들 때부터 숟가락을 내려놓아야 한다. 실제로 과식이 습관으로 굳어지기 전에 대비해야 한다. 과잉으로 보이기 시작하면 그 자극은 이미 자율신경의 순기능에 거슬리고 있는 것이다. 결국 자율신경에도 과잉자극이 되어서 자연스러운 순환에 장애가 생기고 만다. 당연히 이를 치유하는 데는 많은 시간, 고통과 돈이 든다. 문화정책이 실제 과잉이 아니고 과잉처럼 보인다 해도 과잉이 생긴 것으로 간주하고 사전에 막아야 한다. 예산 배분과 동원의 합리성, 책임성(responsiveness)에 특별히 유의해야 한다.
우리 몸에 어떤 부분에 무리가 생기면 몸은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 반응이 신호가 되어 신속하게 변화를 일으키며 항상성(homeostasis)을 유지하려 한다. 그러다 보면 규칙적으로 일어나는 일에 생기는 이러한 항상성이 내재화되기 마련이다. 그때 우리 몸은 이미 새로운 변화에 반응이 늦어지거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문화예술정책도 마찬가지다.
지원정책 중심으로 나아가는데 대해 걱정만 하고, 스스로 자생력을 키우고 지원 없이 살아가는 방안을 만들지 못한다면 문제가 크다. 또 다른 형식의 정책수단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고 그 상태로 굳어진 채로 진행될 수 있다.
우리 몸은 과잉자극을 겪고 나면 아주 특이한 자극이 아니면 그 자극을 느끼기조차 쉽지 않다. 점점 더 강한 자극이 있어야만 반응한다. 지원중심의 예산구조 때문에 지원을 해주고도 욕을 먹는 ‘만성적 불만족 구조’를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이흥재

문화정책을 중심으로 연구하며, 현대사회와 문화예술의 공진화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현재 추계예술대학교 문화예술경영대학원장으로 있으며, 한국문화경제학회 회장, 아시아문화개발원 이사로도 일하고 있다.
그동안 『문화정책론』(2014), 『현대사회와 문화예술』(2012), 『문화사회만들기』(2010), 『문화재정책 개론』(옮김, 2007), 『문화정책』(2006), 『문화예술정책론』(2005), 『예술경영과 문화정책』(옮김, 2002), 『문화예술과 도시경제』(옮김, 2002), 『문화예술경제학』(옮김, 2000)의 저서를 냈다. 그 밖에도 공저서와 연구보고서들을 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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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