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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정책 이슈

중산층과 문화적인 삶

정준호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문화재관리학과 부교수)
  • 2015 7월 ‘문화가 있는 날’ 국립국악원 ©문화체육관광부
    2015 7월 ‘문화가 있는 날’ 국립국악원 ©문화체육관광부


l 중산층에 대한 인식

2015년 1월에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새해 국정연설에서 소득 상위 1% 계층에 대한 증세를 통해서 확보한 재원을 아동보육과 교육 등을 지원하고 중산층의 경제를 살기 위해서 사용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미국 사회에 다시 한 번 중산층에 대한 논란이 일어났다. 이미 2010년 3월에 전 국민의 건강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오바마 케어(Obama care)가 의회를 통과한 후 오바마 대통령은 중산층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1) 오바마 대통령은 새로운 미국 중산층의 기준으로서 주택을 소유하고, 자녀가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으며, 의료보험과 퇴직연금에 가입해 보장을 받고, 가족과 함께 휴가를 즐길 수 있는 것을 제시하였다. 의료나 교육시스템에 대한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오바마 정부가 추구하는 중산층에 대한 기준은 경제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복지나 교육 측면이 강조되었다.

국가마다 중산층에 대한 기준은 상이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중산층은 경제적인 기준에 의해서 정의되어져 왔다. OECD에서는 소득을 기준으로 하여 부양가족수를 감안한 가처분소득이 중간 수준을 의미하는 중위소득 값의 50%~150%의 범위에 속하는 계층을 중산층으로 정의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OECD의 기준을 따르고 있다. 미국 상무부 산하의 총조사국(Census Bureau)에서는 중위소득의 50%~200%의 범위를 중산층으로 분류하고 있어서 OECD보다도 중산층의 범위가 더욱 넓다. 각국의 소득 관련 통계를 발표하는 룩셈부르크소득연구소(LIS)에서는 중위소득의 75%~125%의 범위를 중산층으로 구분하여서 중산층의 범위가 상대적으로 좁다.

중산층의 기준을 어떻게 설정하든지 최근에는 중산층의 몰락에 대한 경고가 각국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특히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미국과 서유럽의 선진국에서도 지속적인 경제 불황과 함께 중산층이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중산층 살리기’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도 이러한 위기의식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2011년에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 올해의 단어로 ‘쥐어짜인 중산층(squeezed middle)’을 선정했을까.

l 중산층에 대한 문화적 접근

중산층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국가마다 기준이 상이한 것보다는 중산층에 대한 기준과 현실적인 인식의 괴리가 점차 크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소득 기준만으로는 국민들이 자신을 중산층으로 인식하기 어려우며, 현대사회의 중산층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3년에 현대경제연구원에서 OECD 기준의 중산층과 한국 국민이 체감하고 있는 중산층과의 괴리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한 것에 따르면 OECD 기준으로는 중산층에 해당하지만 본인이 저소득층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54.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괴리의 원인으로는 가계수지, 체감물가, 일자리의 질, 주택 보유, 노후 준비 등을 꼽았다. 괴리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소득 향상, 물가 및 주거 안정, 노후 준비 지원, 계층의식을 고려한 정책 수립 등을 통해서 중산층이 스스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삶의 질 개선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삶의 질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여건의 향상만으로는 미흡하다. 2015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앵거스 디턴도 그의 저서 『위대한 탈출(The Great Escape)』에서 소득의 증가가 일정 수준까지는 행복의 증진과 정비례하지만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추가소득이 행복을 증진시키는 것이 어렵다고 설명하고 있다.  

앞의 연구결과들에서 보듯이 중산층의 문제를 단순히 경제정책의 대상으로만 치부해서는 해결이 어렵다. 중산층에 대해서 경제적 기준 이외에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하기 위한 노력들은 여러 국가들에서 이루어져 왔으며, 중산층의 계층의식을 형성하고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서는 문화적인 접근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추세이다. 이런 점에서 프랑스의 퐁피두 대통령이 제시한 중산층의 기준은 비록 국가 간의 사회환경적 및 시간적 격차가 존재하지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68혁명의 와중에서 대통령 후보인 퐁피두는 그의 공약집에서 삶의 질에 대해서 언급하며, 외국어를 하나 정도 하며, 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있고,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으며, 다른 사람에게 대접할 만한 요리를 할 줄 알고, 사회적 약자를 도우며, 공분(公憤)에 의연히 참여할 수 있는 것을 중산층의 기준으로 제시하였다.2)  퐁피두 대통령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덕목과 함께 문화를 교류하고 즐길 수 있는 능력을 중산층의 중요한 기준으로 인식하였다. 개혁개방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을 통해서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에서도 경제발전의 중추세력인 중산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전에는 경제적 기준에 따라서 중산층을 구분하였지만 최근에는 중국에서도 경제적인 기준에만 도달해서는 중산층으로 인정받기가 어렵다. 중국 정부의 외문출판발행사업국(外文出版發行事業局) 산하의 인민화보(人民畵報)에서 발간하는 월간 《중국》에 보도된 내용을 보면 중국에서 신(新)중산층이 되려면 물질적인 기준에 도달한 것 이외에 스포츠에 대한 중시, 유행에 관심을 가지지만 무분별한 소비가 아닌, 때와 장소에 맞는 패션 감각, 환경보호와 자선활동과 같이 사회구성원으로서 공동의 문제에 대한 참여 등을 제시하였다. 비록 경제적 부를 소유하고 있지만 이러한 추가적 요건들을 갖추지 못했다면 투하오(土豪: 촌스러운 부자라는 의미)일뿐이다. 급속한 경제 발전기에 벼락부자가 된 투하오들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싸늘하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중산층에 대한 문화적 접근이 필요하다. 2014년 3월부터 시행된 「문화기본법」에서도 문화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인정하고 자유롭게 문화를 창조하고 문화 활동에 참여하며 문화를 향유할 권리를 강조하고 있다. 중산층에 대해서 문화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중산층으로서 갖추어야 할 문화적 기준을 도출하는 한편 중산층이 실질적으로 문화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여건 마련이 시급하다. 중산층이 문화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경제적 여유뿐만 아니라 시간적 여유와 정서적 함양이 전제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의 현실을 보면 대다수의 중산층이 문화적인 삶을 사는 것이 매우 어려워 보인다. OECD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인의 연간 근로시간은 2014년 기준으로 2,124시간으로 멕시코에 이어 2위였다. 이는 OECD 회원국 평균 근로시간인 1,770시간보다 354시간이 길었으며, 근로시간이 가장 짧은 독일의 1,371시간에 비하면 753시간이나 길었다. 문화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65세 이상 노인의 경우에도 노후소득에서 근로사업소득이 49.9%를 차지하고 있어서 편안한 노후를 보내지 못하고 늙어서도 소득활동에 얽매여 있어야 한다(연합뉴스. 2015.10.20.).
문화융성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는 일반인들이 보다 쉽게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2014년 1월부터 ‘문화가 있는 날’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러한 단기적 대증요법에만 매달리지 말고 국민들이 생애주기에 맞춰 문화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근본적이며 체계적인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이러한 정책의 주요 대상은 중산층이 되어야 한다. 중산층은 국민경제의 버팀목이면서 ‘문화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중추세력이기 때문이다. 중산층이 자유롭게 문화적인 삶을 살 수 있을 때 진정한 문화융성의 기틀도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1) 오바마 케어는 오바마 대통령이 주도한 의료보험시스템 개혁법안으로서 민영보험에만 의존하는 기존의 의료보험시스템을 개선하여 전 국민이 건강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함으로써 중산층에게는 보조금 지급을 통해 의료비 부담을 낮추고, 저소득층은 기본적인 의료보장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다.
2) 68혁명은 1968년 5월에 프랑스에서 학생과 노동자들이 일으킨 사회변혁운동이다. 학생과 노동자들은 대규모 시위와 총파업 등을 통해서 권위주의와 보수체제 등 기존의 질서에 항거하였으며, 이러한 운동은 기타 유럽 국가와 미국, 일본 등 국제적으로 확산되었다.

정준호
정준호

현재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문화재관리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정책학회 연구위원, 한국문화정책학회 학술위원 등을 맡고 있으며, 문화체육관광부 기타공공기관 경영평가위원, 중소기업청 자문위원, 백제문화제추진위원회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 중이다. 주요 관심분야는 지역문화정책, 전통문화의 생활화, 문화재의 거버넌스적 활용, 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국가 간 협력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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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