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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정책 이슈

없는 장터를 만들 줄도 아는 창조적 문화마케팅 정책

심상민 (성신여자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 무형문화재 3인이 제작한 함 전시 모습 ©한국문화재재단
    무형문화재 3인이 제작한 함 전시 모습 ©한국문화재재단


l 정책으로 보는 문화마케팅

기업들이 한껏 왕성하게 문화마케팅 활동을 펼치고 있다. 기업들은 수익이나 이미지 제고가 된다고 판단하면 고미술 문화유산이건 다른 나라 정신문화이건 상관 않고 홍보와 판촉 수단으로 문화를 끌어들인다. 흔히 기업메세나라고도 부르는 기업들의 문화마케팅 확장 노력들을 보고 있자면 흡사 신대륙을 개척해 지리상 영토를 넓혀나가듯이 진취적이고 모험적인 기세를 느끼곤 한다.

최근 우리 전통문화재 함(函) 프로젝트를 해낸 어느 외국 회사 이야기를 한 번 살펴보자. 이 창조는 최고급 시계 명가 바쉐론 콘스탄틴이 도맡아 해냈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1755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시작되어 260년간 단 한 번도 그 역사가 끊긴 적 없이 이어져온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고급 시계 제조사다. 이 회사는 2015년 설립 2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한국문화재재단과 함께 국내 무형문화재 3인의 전통 공예를 후원했다. 이를 통해 1개의 ‘함函’을 제작하는 로컬 프로젝트를 시작해 지난 9월 완성해냈다. 한국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이 서양 명품 기업 안목이 고른 한국의 가치가 실제 작품 현물로 탄생하게 되었다.
어느새 잊히고 멀어져만 갔던 소목장, 옻칠장인, 금속 두석장 무형문화재 명인들이 영화 〈살아있는 박물관〉 마냥 무너졌던 역사를 일어서게 해주었다. 의뢰인의 작품 디자인 콘셉트 자체부터 살아 있었다. 천원지방(天圓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동아시아 고대 우주론에서 착안한 다음 저렴한 제품이라도 1,700만 원 수준이라는 스위스 최고가 명품 시계를 담는 함 제작을 결정했다. 역사적으로는 조선시대 어보(御寶)를 담는 보록에서 형태적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어보’는 조선 왕조의 대표적인 유물로 이를 담는 함을 ‘보록’이라고 칭한다. 실제 영조 임금 때 사용했던 어보와 국새를 담는 함도 남아 있다.  
조선 왕실의 함이 오늘날 스위스 명품 시계를 담는 함으로 재창조되는 이 프로젝트의 기획과 개발, 제작, 문화마케팅까지 전 과정은 정말 어디 교과서 국사책 못지않은 생생함으로 다가온다. 마침내 소목과 옻칠, 장석을 맡은 세 장인이 완성한 현대 문화재가 공개되었을 때 운집한 외교사절, 국내외 기업과 미디어 관계자들은 한국사가 뿜는 아우라에 흥분하고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말하자면 기업 하나가 국가도 잘 못 하고 있던 마켓 메이킹(market making) 역할을 아주 거뜬히 수행해낸 셈이다. 문화재 복원과 현대적 이용을 목적으로 무형문화재 명장들에게 프로젝트를 발주했고 제품 발표와 전시회까지 해냈으니 그야말로 없던 수요를 창출해냈고 없던 시장을 조성한 격이 된다. 이와 같은 문화 부문 마켓 메이킹, 즉 시장 생성은 국가도 적극적으로 맡아 할 수 있는 문화마케팅 활동이라고 본다. 문화마케팅이 반드시 시장 흐름과 반응에 민감한 기업들만이 독점하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아니라는 뜻이다.
국가도 기업과 마찬가지로 문화마케팅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는 대상 또는 영역을 문화정책과 관련해서 크게 4개 범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를 문화마케팅을 위한 문화플랫폼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들은 1) 문화유산 2) 문화예술 3) 문화산업 4) 문화관광(체험) 등 4개 기둥이다. 예를 들어 ‘신라문화’라는 큰 범주 안에서 기업이 문화마케팅을 펼친다고 할 때 이들 4개 범주 안에서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우선 신라문화 발신과 활용에 특화한 플랫폼으로서 디지털 큐레이션 센터를 지향하는 신라문화플랫폼 첫 번째 서비스 도메인은 문화유산이다. 이는 본원적 콘텐츠이면서 신라문화 자체 역량이자 문화원형, 원천기술에 해당한다. 과거 역사 헤리티지를 의미하는 위대한 자산으로서 기본적인 출발점이 된다. 신라문화플랫폼 두 번째 서비스 도메인인 문화예술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심미 세계를 다루게 된다. 여기에는 신라 문화유산을 현대화하는 해석도 포용하는 창작, 재창조 작업에 대한 정보가 집약된다. 아울러 실크로드 횡단성과 신라 전통이 문학, 미술 등 순수 예술 모티프로 작용하는 여러 유형의 활동과 작품들이 들어온다.
이들 4개 큰 범주들은 문화유산 → 문화예술 → 문화산업 → 문화관광(체험)으로 이어지는 선형적인 흐름(flow)을 형성하는 동시에 전 방위적인 사슬 관계로 엮이는 입체적인 인과 관계를 나타내게 된다.

l 문화마케팅 정책 유형

문화정책 일환의 문화마케팅 활동은 선발 주자인 기업 유형을 참고하여 따르되 좀 더 창의적인 변형이 가능할 터이다. 우선 기업의 문화마케팅 활동 유형을 만들어보자.
기업 문화유산 마케팅 활동은 기본적으로 기업 주체와 문화유산 자원이라는 마케팅 소재 또는 콘텐츠 대상과 관계성에 따라 여러 전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첫 번째는 기업이 외부 미디어 문화자본에 의지, 문화아이템을 재창조하는 형태이다. 여기에는 LS 네트웍스가 발행하는 사외보 보보담과 아모레퍼시픽이 오설록 브랜드를 통해 구현해온 녹차 전통문화 활용 등이 속한다. 두 번째는 기업이 외부 문화유산 자본을 수호한다는 스폰서, 후원(patron) 개념이다. IBM이 러시아 에르미타주 미술관을 디지털화하는 보존 활동을 지원한 사례나 영국 테이트 모던 미술관을 지원해온 유니레버 등 수많은 기업 사례가 있다. 세 번째는 기업을 내부 문화자본으로 감싸 안는다는 형태이다. 기업 스스로 문화마케팅을 펼친다는 차원이 아니라 어느 나라, 어느 지역, 어느 집안 등 특정 문화유산, 문화자본이 기업 활동을 불러들이는 구조다. 할리우드 영화 〈어벤저스〉 한국 로케이션 촬영 때 결핍했던 한국 문화유산 활용이 바로 역설적인 이 유형의 미완성 불발 케이스다. 네 번째는 기업이 문화자본과 만나 기업문화를 바꾸고 문화기업이 된다는 드라마틱한 유형이다. 문화기업을 표방하는 CJ, 스타벅스, 로레알 등이 이에 해당한다. 다섯 번째는 자체 문화자본(인적, 정신적 등)으로 스스로 문화기업으로 발전하는 고도화된 형태이다. 안동 유교문화를 배경으로 발전해온 풍산금속과 경주 양동문화, 정신문화 DNA를 창업주로부터 이어받은 코오롱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처럼 기업들이 다양한 경로와 스타일로 문화마케팅 활동을 펼쳐오고 있는 흐름을 반영하여 국가도 적극적인 문화마케팅 정책을 개발해내야 할 시점이 되었다.

l 문화마케팅 정책 시범 사업 1순위 : 답십리

현재 우리 정부가 한국에서 실행할 수 있는 문화마케팅 정책 후보군에는 수많은 사업들이 올라올 수 있을 터이다. 당연히 가장 시급하고도 중요한 과업을 우선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 기준은 무엇일까? 문화마케팅 기초 인프라에 해당하는 마켓메이킹, 즉 시장생성이 되어야 한다. 시장이 없다면 국가든 기업이든 마케팅 활동을 할 비빌 언덕이 없다는 얘기이니까.
여기 정말 위태로우면서도 가장 소외받은 문화마케팅 정책 사각지대 하나가 있다. 답십리 고미술 시장이다. 그 옛날 세운상가처럼 답십리 고미술 상가도 삼희아파트 2, 3, 5, 6동의 1층과 송화, 우송빌딩 1층에 벌집처럼 모여 있다. 80년대가 물려준 주상복합 아파트 상가 층에 여느 꽃집처럼, 잡화점처럼 길게 각 잡고 나열해 있는 공업도시, 산업단지 풍경이다. 이런 비문화 반예술적 구조는 30여 년 전 83년께 서울 도심권에서 문화난민으로 밀려났던 아픈 이야기에 기인한다. 인사동, 아현동, 광희동, 이태원 등지에서 다채로운 골동품 시장을 지켜왔던 상인들이 당시 급등한 임대료에 못 버티고 외곽이나 다름없었던 답십리 아파트 상가에 모였던 탓이다. 골동품 시장 상인들이 답십리 새 둥지에 깃들어 자연 발생적 문화 클러스터를 조성한 것은 다행이었으나, 사대문에서도 한참 벗어난 그곳 답십리에서 손님을 끌고 골동품 고미술 마케팅활동을 해나가기에는 너무 버거웠다고 한다.
“80년대 초쯤 이른바 최상급 문화재들은 죄다 공급이 끊겼어요. 이후 10년 정도 만에 그다음 상급 물품들도 시장에서 거의 다 소진되었지요. 현재는 하급 범주 안에서 가끔 반반한 물품들을 찾을 수 있는 정도입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더 이상 매력적인 고미술 문화재나 골동품들이 시장에 유입되지 않고 있다는 답십리 터줏대감의 설명이다. 국보급, 보물급부터 그다음 진품, 명품들을 대기업 재단이나 거물급 수집가들이 이미 70~80년대 싹쓸이해버린 탓이라는 진단도 있다. 엄청나게 많은 우리 문화재와 골동품이 일본, 미국 등 해외로 반출된 흑역사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지금 답십리 고미술 상가 절반 이상을 중국산, 인도산, 동남아산 골동품류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산으로 명맥을 지켜온 2동 상가마저도 북한산 한복이며 자수 물품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관광객 구미에 맞춘 국적불명 기념품들로 도배한 인사동 거리 현기증이 자꾸 겹치고 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답십리로 가느니 굳이 비행기 타고 영국 런던 노팅힐 포토벨로 마켓까지 가서 서양은 물론 동양 골동품, 고미술을 구하러 다닌다는 말이 나돌 정도가 되었다. 이런 식으로 우리 안방에서 새는 내수 수요를 못 막다 보면 문화융성 토양이 되는 시장 기반이 점차 붕괴될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런 지점에 국가 정책이 들어와야 한다. 마땅히 지켜야 하고 활성화시켜야 할 기초적인 장터, 시장마저 무너지는 고미술 시장과 같은 현장이라면 즉각 마켓메이킹할 줄 아는 터치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답십리 가서 순수예술이며 문화산업 기획에 영감과 자극을 받아올 수 있는 국가 창의성 체계가 튼실하게 세워질 수 있다.
우리 안에서 무너지고 있는 오랜 전통에서부터 우리 문화마케팅 정책이 피어났으면 좋겠다. 답십리 시장 살리고 인사동 유통 혁신하는 간단치 않은 과업을 결코 귀찮지 않게 척척 맡아 하는 문화정책, 문화행정을 기대한다.



심상민
심상민

심상민은 현재 성신여자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 위싱턴 대학교에서 석사(MBA, Finance 전공)를, 연세대학교 대학원 경영학과에서 박사학위를 각각 취득하였다. 삼성경제연구소 경영전략실/기술산업실 수석연구원과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이사, 영화진흥위원회 부위원장/위원장 직무대행 등을 지냈다.
주요 관심 분야는 콘텐츠 비즈니스 연구, 콘텐츠와 창의성, 문화예술경영학 연구, 문화경제학 연구, 문화예술과 미디어 교육(미디어리터러시 등), 디지털과 실학의 만남, 디지털문화, 한류 연구, 한국문화의 글로벌화, 문화마케팅, 컴퓨터 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콘텐츠 비즈니스, 미디어 산업 전략, 문화산업 원형 및 기술 연구, 인문사회과학 산학협동과 R&D 등이다. 주요 저서로는 『엔터테인먼트산업의 이해』(2009), 『문화마케팅』(공저, 2008), 『컬처 비즈니스』(2007), 『미디어는 콘텐츠다』(2002), 『블루콘텐츠 비즈니스』(2005), 『문화콘텐츠입문』(공저, 200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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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