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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정책 이슈

문화를 통한 공동체 활성화,
객(客)이 주(主)가 되는 것을 경계하자!

장세길 (전북연구원 부연구위원)
  • 내소사 석포리 당산제 (사진:www.naesosa.org)
    내소사 석포리 당산제 (사진:www.naesosa.org)

문화향유를1) 국가책무로 규정하는 논리 중 하나가 문화권(cultural human rights)이다. 하지만 국가가 문화향유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문화권만으로 설득하기에는 어딘지 부족한 게 많다. 많이 인용되는 ‘매슬로우의 욕구단계’(Maslow’s hierarchy of needs) 역시 인간의 권리 측면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현대사회에서 문화향유가 필요한 구조적 측면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한다. 문화향유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논리는 1960년대 ‘문화의 민주화’ 전략이 도출되면서부터이지만, 세계적으로 확산된 것은 1980년대 이후, 즉 세계화가 본격화되면서이다. 이 말은 문화향유의 국가책무가 세계화라는 시대적 흐름과 맞물려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현대사회의 구조적 문제에서 설명되고,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문화복지네트워크가 마련한 토론회에서 이현서(2013)는 국민의 문화적 감수성을 증진시키는 문화복지(광의의 개념) 정책을 국가가 추진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 “사회복지 개념과 복지국가 등장이 역사적으로 시장중심 자본주의 위기로 나타난 사회적 ‘위험’(예, 실업, 산재 등)에 대응하기 위해 등장했듯이, 문화복지 및 문화복지 국가의 등장도 오늘날 현대사회의 ‘위험’에 대응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가 말하는 현대사회의 위험에 대한 설명을 조금 더 요약해보면, 기든스가 말하는 “존재론적 안전에 대한 불안감”(Giddens, 1991), 벡(Beck, 1998)이 지적하는 “현대사회의 불확실성” 속에서, 현대인은 타인과 소통하고 공감을 형성하는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성과달성에 매달리는 “피로사회”(한병철, 2010)에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개인적으로 파편화되어 사회적 신뢰 및 공동체 의식이나 문화를 형성해 가는 토대를 갖추기가 어려운 사회적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러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개개인의 문화적 공감력과 문화를 통한 소통을 강화함으로써 강한 신뢰관계 구축과 존재론적 안정감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드는 데에 문화복지(광의의 개념)의 공익적 가치가 있다.
현대사회의 존재론적 불안감과 위험을 해소하기 위해 공동체가2) 강조되고 있는데 그 매개 수단으로 문화가 강조되는 것은 문화가 갖는 소통능력 때문이다. 문화향유를 통해 문화감수성을 증진시키면 ‘문화수용력’과 ‘문화표현력’도 함께 향상돼 타인(타문화)을 이해하고 자신을 타인에게 이해시키는 상호 소통능력이 증진된다. 개인의 문화감수성을 증진시킴으로써 사회구성원 간 문화공감력과 소통능력을 향상시키고 궁극적으로 공동체 문화의 근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최근 문화정책의 목표를 개인의 문화향유에서 공동체의 활성화로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정부·지자체 지원 사업이나 민간단체 사업을 보면 대부분 사업목적에 문화공동체 활성화를 포함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런데 붐처럼 일어나고 있는 공동체 활성화를 목적으로 하는 문화사업과 관련하여 우려스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문화를 통해 공동체를 활성화하려는 목적이 현대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소하려는 데 있지 않고 문화 접근의 대중화(문화의 민주화)에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그중의 하나다. 필자는 ‘현대사회의 구조적 모순’에서 출발하는 것과 ‘아파트 담을 허물자’, 또는 ‘예술을 같이 즐기자’는 식의 접근방식은 문화정책을 수립하거나, 현장에서 실천하는 데 있어 다른 결과를 낳는다고 생각한다. 접근방식에 따라 공동체를 활성화하기 위한 문화예술정책의 대상, 또는 정책을 통해 얻고자 하는 바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도시와 농촌은 공동체를 활성화하려는 내용이 다를 수밖에 없다. 농촌은 이미 문화로 형성되어 있는 공동체가 있다. 없었던 적이 없다. 그런데 이미 오랜 시간에 걸쳐 ‘문화’로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던 농촌 마을에 어느 날 갑자기 외지인이 와서 ‘예술’로 공동체를 활성화한다고 한다. 그것은 마을주민의 예술에 대한 접근을 증진시키는 것이지, 공동체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물론 예술을 향유하면서 공동체가 더 강화될 수는 있으나, 현대사회의 존재론적 위험에 대한 대응으로서 등장한 문화공동체 전략과는 거리가 있다. 이거야말로 지식인이 ‘예술’의 아름다움(미학)을 ‘강요하는’ ‘문화의 민주화’ 전략이다. 오히려 ‘당산 살리기’라는 사업으로 사라지거나 명맥을 유지하기 어려웠던 마을굿(당산제)을 되살리는 활동이 농촌 노인의 존재론적 위험에 대응하는 ‘문화’ 매개 공동체 활성화에 부합한다.
문화를 매개로 공동체를 활성화하려는 사업이 자칫 문화예술인 일자리 사업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당연히 지역문화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문화사업을 통해 문화예술인의 일자리가 마련되어야 한다. 다만, 문화예술인의 활동기반이 마련되고 일자리가 창출되는 효과는 어디까지나 문화 매개 공동체 활성화 사업의 부수적 성과이어야 하지 그것이 핵심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문화예술인의 자립기반이나 일자리는 문화예술인의 직접 지원 혹은 관련 시장의 확대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다른 목적성 사업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것은 오히려 근본적인 문제를 회피하는 꼴이 된다. 게다가 다른 목적성 사업에서 발생하는 일자리는 한시적이면서 처우 자체가 열악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일자리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문화 매개 공동체 활성화 사업의 상당수가 주요 성과로 문화예술가의 활동무대가 마련되었거나 일자리가 창출됐다는 것을 내놓는다. 그러다 보니 공동체사업의 주체인 공동체 구성원이 수혜대상으로 상정되고 실제 주체는 사업을 진행하는 문화예술가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비나 지방비를 지원받는 사업을 추진하다가 예산지원이 끊기는 순간, 공동체 활성화를 실천하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일이 대표적인 사례다.

문화를 매개로 공동체를 활성화함으로써 현대사회의 존재론적 위험을 해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체라는 유행에 편승하거나 이데올로기로서 공동체를 강조하는 행위를 경계해야 한다. 공동체를 활성화한다는 목적에서 출발했지만 공동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목적이 불명확한 상태에서 공동체에 접근할 경우 공동체로부터 사업 자체가 강하게 거부당하거나, 오히려 공동체를 해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면, 객(客)이 주(主)가 되는 사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참고문헌〉
이현서, 2013, “문화복지연구회 공개세미나 토론문”, 「문화바우처사업, 어디로 가야하는가」, 43~44쪽.
한병철, 2010, 『Mudigkeitsgesellschaft』, 김태환 역(2012), 『피로사회』, 서울: 문학과지성사.
Beck, Ulrich., 1998, World Risk Society, Cambridge: Polity Press.
Giddens, Anthony., 1991, The consequences of modernity, Cambridge: Polity Press.


1) 여기에서 말하는 문화란 「문화기본법」이 규정하는 문화 정의보다는 실제 정책에서 다뤄지고 현장에서 실천되는 문화, 즉 문화예술을 말한다. 문화향유라고 하면 대부분 문화예술의 향유로 이해하고 있으며, 주요 정책이나 사업 역시 그러하기 때문이다.
2) 공동체라는 말 대신에 커뮤니티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필자는 개념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면 굳이 외국어 표현을 쓸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 공동체로 표기한다.


장세길

전북대학교에서 문화인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재)전북연구원에서 문화정책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작은영화관, 천원목욕탕(작은목욕탕), 시민예술촌 등을 제안한 “전라북도 삶의 질 정책” 연구를 비롯해 문화복지 및 지역문화진흥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다. 최근에는 지역문화자원을 창조적으로 활용하는 부문(전통문화산업, 문화콘텐츠산업)과 관련하여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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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