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호보기
  • 구독신청
  • 구독자의견
  • 아르코발간자료
  • 인쇄
  • 맨위로 이동

칼럼

서울시향 사태: 예술, 경영, 행정의 불협화음

김정수 (한양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 서울시향 사태: 예술, 경영, 행정의 불협화음


정명훈 전 서울시향 예술감독이 지난해 12월 30일 마지막 연주회를 끝내고 감독직을 사임하였다. 2006년부터 10년간 서울시향을 지휘해왔던 세계적인 마에스트로의 퇴장은 그러나 크나큰 아쉬움을 남겼다. 폭언과 성 추문 논란, 부적절한 예산집행 구설수, 심지어 경찰수사와 고소·고발이 뒤엉키면서 격한 비난이 난무하고 추한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클래식 애호가들은 물론 많은 시민이 이번 사태를 대단히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혹자는 박현정 전 대표의 폭압적 경영방식이 사태의 발단이라고 하고, 또 혹자는 공공기관의 규정과 절차를 무시한 정명훈 전 감독의 유아독존식 처사가 문제의 근원이라고 한다. 과연 이번 서울시향 사태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서울시립교향악단은 본질적으로 ‘예술’과 ‘경영관리’ 그리고 ‘공공행정’이라는 아주 상이한 3개의 세계가 겹쳐있는 다중구조의 조직이다. 우선 서울시향은 기본적으로 클래식 음악 공연을 위해 조직된 예술단체이다. 또한 서울시향은 고객(즉 청중)에게 서비스(즉 음악 공연)를 상업적으로 제공(즉 티켓 판매)하며 운영되고 있는 재단법인이다. 마지막으로 서울시향은 민간단체가 아니라 서울시 산하의 공공기관이다. 대표이사와 예술감독은 서울시에서 임명하며, 예산의 60~70% 정도를 서울시 출연금으로 충당해오고 있다. 간단히 정리하면, 서울시향은 ‘예술’을 제공하기 위해 ‘공금’으로 ‘경영’되는 조직인 것이다. 이처럼 서로 다른 세계가 중첩되어 공존하는 조직이라면 그 구성원들 사이에 심각한 문화충격(culture shock)이 발생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물론 예술, 경영, 그리고 행정 이 세 가지는 서로 공통된 속성도 있기 때문에 상호 융합을 통한 조화가 가능하기도 하다. 우선 예술과 경영은 시장거래라는 측면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예술 역시 기본적으로 하나의 상품 혹은 서비스로서 시장원리에 의해 사고파는 거래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상품·서비스의 생산 및 판매를 관리하는 것이 경영의 핵심이다. 오늘날 ‘예술경영’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고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것도 예술과 경영 사이에 이러한 교집합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예술과 행정은 공익적 가치의 창출이라는 점에서 공통된 측면이 있다. 행정의 궁극적인 목적은 공익 극대화, 즉 국민이 행복한 삶을 살도록 섬기는 데 있다. 예술이 제공하는 제반 가치들은 모두 행정이 추구하는 공익에 부합되는 것들이다. 이 때문에 오늘날 국가 차원에서 문화·예술의 발전을 지원하기 위한 ‘문화행정(문화정책)’의 중요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한편 경영과 행정은 목표달성을 위해 인적·물적 자원을 전략적으로 관리하는 활동이라는 점에서 유사한 속성을 공유한다. 공공기관이나 기업체 모두 계층제, 전문화, 분업 등 합리적 문제 해결을 위한 관료제적 조직이라는 측면에서는 차이가 없다. 특히 ‘공기업’은 정부가 제공해야 할 사회공익적인 상품이나 서비스를 사기업 형식의 조직을 통해 생산·판매한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행정·경영 융합체이다.

하지만 예술과 경영과 행정은 본질적으로 타협이 불가능한 각자의 고유한 특성들이 있다. 먼저 ‘예술’이 예술다우려면 필히 창작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예술의 발전은 새로운 생각과 관점 및 접근방식들이 끊임없이 시도되고 때로는 시행착오도 겪으면서 이루어져 왔다. 예술가의 자유를 얽어매는 틀은, 설령 그것이 매우 좋은 의도에서 만들어졌다고 해도, 예술적 창의성을 통제함으로써 결국 예술을 시들게 만들 가능성이 매우 크다. 또한, 예술의 세계는 본래 지극히 불확실하다. 어떤 교육을 시키고 어떤 지원을 하면 언제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게 된다는 식의 투입-산출 방정식 같은 것은 예술의 세계에 있을 수 없다.

‘경영’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는 이익의 극대화이다. 쉽게 말해서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중요한 것은 인적·물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일이다. 유능한 경영자라면 미래의 변화를 정확히 예측하고 목표를 명확히 설정한 후 합리적 계산을 통해 최선의 수단을 찾아내고 조직구성원들을 잘 통솔하여 계획대로 집행되도록 해야 한다. 반면 ‘행정’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공익의 극대화이다.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정부는 국민의 통치자가 아니라 국민을 섬기는 머슴, 즉 공복(公僕)이다. 주권자인 국민이 위임해준 권력과 국민이 주는 세금으로 국민의 행복을 위해 일해야 하는 존재가 바로 정부인 것이다. 따라서 행정의 세계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준거는 공공성이다. 정부는 반드시 국민의 대표인 의회가 제정한 법규에 근거하여 일해야 한다. 공공 예산은 국민으로부터 거둔 공금이기 때문에 자의적으로 지출되거나 낭비되어서는 안 된다. 정부기관의 권력과 예산은 오로지 국민의 행복을 위해 사용될 때에만 그 정당성이 인정되는 것이다.

예술, 경영, 행정이라는 세 가지 세계의 고유한 속성을 고려하면 이들의 융합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예술과 경영이 합쳐진 예술단체의 관리운영에 있어서 예술성의 추구와 상업성·경제성의 추구가 때로 상충되어 갈등을 빚는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바이다. 예술과 행정이 혼합된 문화행정에 있어서는 예술가의 자율성과 행정의 경직된 법규준수가 서로 충돌하여 갈등이 야기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경영과 행정의 합체인 공기업의 경우, 공익성 재화·서비스의 생산이라는 특수성을 강조하다 보면 방만한 경영과 비효율성이 문제 되곤 한다. 이처럼 두 개의 서로 다른 세계를 조화롭게 융합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물며 서울시향처럼 세 개의 상이한 세계가 중첩되어 있는 조직이라면 갈등이 없는 게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이번 서울시향 사태가 처음 세간에 알려진 것은 지난 2014년 12월 2일이었다. 사무국 직원 17명이 박현정 전 대표가 폭언과 성추행, 인사 전횡 등을 일삼았다며 호소문을 내고 그의 퇴진을 요구하면서였다. 이에 박 전 대표는 이것이 자신을 겨냥한 직원들의 음해라고 반박하면서 정명훈 전 감독이 그 배후에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12월 23일 서울시향 직원 10명이 박 전 대표를 강제추행과 성희롱 등의 혐의로 고소하자, 29일 박 전 대표는 대표이사직을 사퇴하였다. 그런데 2015년 8월 11일 경찰은 박 전 대표에게 혐의가 없다고 발표하면서 그를 고소했던 서울시향 직원들을 명예훼손 피의자로 전환하여 수사를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정 전 감독이 서울시향 예산을 개인적으로 전용했던 사례 등이 알려지게 되었고 나아가 그의 부인이 서울시향 운영에 과도하게 개입했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정 전 감독은 박 전 대표의 인권유린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항변했고, 박 전 대표는 정 감독의 서울시향 사조직화야말로 심각한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갈등은 우선 예술세계와 경영세계의 문화충돌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박현정 전 대표는 우리나라 재계를 대표하는 삼성에서 오랫동안 임원 생활을 했던 경력의 인물이다. 그가 2013년 2월 서울시향의 대표이사로 부임하면서 많은 기대를 모았던 것도 유능한 여성 CEO로서의 능력과 자질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울시향의 “방만한 행태를 바로 잡겠다”는 그의 의욕은 직원들과의 잦은 마찰과 갈등을 초래하였다. 박 전 대표 취임 2년 만에 직원 절반이 퇴사했다는 사실이 그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 삼성이라는 기업체에서 통용되는 경영관리 스타일이 서울시향 직원들에게는 대단히 낯설고 수용하기 어려웠을 수 있다. 물론 박 전 대표가 직원들에게 인격 모욕적인 막말과 폭언을 퍼부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분명히 옳지 못한 처사이다. 그런데 삼성에서 잔뼈가 굵은 그가 서울시향에서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이성을 잃을 정도로 화가 나게 되었을까? 아마도 짐작건대 삼성과 서울시향 두 조직이 운영되는 방식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업 경영인 시각에서는 서울시향의 조직행태가 용납되기 어려울 정도로 방만하게 보였을 수 있다. 반면 예술단체 구성원들에게는 박 전 대표의 질책이 충격적이고 참기 어렵게 고통스러운 폭압이었을 수 있다. 경영세계의 사람과 예술세계의 사람들의 만남은 이렇듯 서로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면서 갈등으로 폭발되었던 것이다.

한편 서울시향 사태는 예술세계와 행정 세계의 문화충돌이라는 관점에서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정명훈 전 감독은 “음악 외에는 모른다”고 자주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가 서울시향 예술감독의 위치에 있으면서 규정에 어긋난 처사를 했던 사례들이 여러 건 알려졌다. 예를 들면, 대표이사의 결재 없이 피아노 리사이틀을 5회 개최하였고, 해외 오케스트라 객원지휘 요청을 받고는 예정된 서울시향 공연 3건을 변경하였다. 특히 서울시향의 예산을 사적으로 부적절하게 사용한 사례도 여럿 밝혀졌다. 2015년 1월 서울시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는 본래 매니저에게 지급하도록 한 한국~유럽 왕복 비즈니스석 항공권을 실제로는 아들과 며느리가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항공료 1,320만 원이 결재되었음이 지적되었다. 또한, 2009년에는 정 전 감독의 큰아들이 1,300만 원짜리 미국 왕복 비즈니스석을, 둘째 아들과 며느리, 막내아들이 600만 원짜리 왕복 항공권을 이용했는데 서울시향은 티켓의 탑승자 이름도 확인하지 않고 정산해주었다. 한편 2007년과 2008년에는 정 전 감독이 한국에 머무는 동안에 계약서에도 없는 호텔비 4,000여만 원이 지급되었으며, 아들이 사용한 호텔비 360만 원도 정산되었다.

서울시향과 정 전 감독의 이러한 행태는 공익추구와 법규준수를 강조하는 행정 세계에서는 사실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서울시향이 공공성을 무시하고 예산을 허비한다는 것은 곧 국민에 대한 공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시의회가 행정감사를 통해 서울시향의 규정 위반을 질책하는 것도 동일한 맥락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향 직원들과 정 전 감독을 그저 나쁜 사람들이라 단정하고 정죄할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예술세계에서 그 정도 일은 흔히 있을 수 있는 관례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경직된 법규에 구애받지 않는 이런 식의 “유연한 대처”는 우리 사회 어디든 파보면 다 나오는 보편적인 관례가 아닐까?) 어쩌면 그들의 시각에서 볼 때 당연한 일을 가지고 욕을 먹는 것이 오히려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정 전 감독이 자신을 향한 비판에 대하여 “문명화된 사회에서 용인되는 수준을 훨씬 넘은 박해”라고 탄식한 것은 계산된 위장술이 아니라 그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이번 서울시향 사태는 예술과 경영과 행정이라는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들 간의 문화충격과 갈등의 산물로 이해될 수 있다. 비단 서울시향뿐만 아니라 공금으로 운영되는 모든 공공예술단체는 이러한 다중구조 속에서 격렬한 충돌이 빚어질 가능성이 상존한다. 상이한 세계, 상이한 문화권에서 살던 사람들이 함께 모여 불협화음을 내지 않고 융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갈등을 최소화하고 예방하기 위한 첫걸음은 우선 상대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상호소통을 통해 그들 사이의 공통된 영역을 확장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기울여나가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모든 공공예술단체의 성숙한 융합을 기대하며 응원한다.

(사진: 서울시립교향악단 공식 페이스북)


김정수
김정수

고려대 법과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 Yale University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고려대 공공행정학부에 재직하였으며 현재는 한양대 정책과학대학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문화정책학회 창립이사, 한국정책학회 편집위원장, 문화체육관광부 자체평가위원, 공공기관 경영평가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주요 관심분야는 문화정책과 정책이론이다. 주요 저서로는 『문화행정론:이론적 기반과 정책적 과제』(학술원 우수도서 선정), 『스크린쿼터의 추억:한국영화 의무상영제도 변천사』 등이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는 「스크린쿼터와 딴따라:대중문화에 대한 정부개입과 문화산업경쟁력에 관한 시론」, 「미녀와 야수:문화행정의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 「불확실성, 결정오차, 그리고 제비뽑기의 역설:문예진흥기금 지원심의방식에 대한 역발상」, 「문화생산의 글로벌화에 따른 새로운 문화정책 패러다임의 모색:우리나라 영화산업의 사례를 중심으로」, 「(신)한류에서 배우는 문화정책의 교훈」 등이 있다.


아르코 로고

[기사입력 : 2016.02.01]